백석-수라

꿀꿀벌 2014. 4. 9. 00:26



수라(修羅)


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

차디찬 밤이다

 

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

나는 가슴이 짜릿한다

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

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

 

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

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

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

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

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만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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방에 가끔 거미가 나온다.

몸통은 병아리콩알만하고 다리가 무척 가늘고 긴 거미.

사람으로 태어났으면 8등신 미남미녀라고 인기가 많았겠지만

다리 네 개 이상 달린 생물을 두려워하는 나에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일 뿐이다.


친구랑 통화하다 불평하니 다리긴 거미는 깨끗한 곳에만 나온다고, 거미를 죽이면 안 좋다고 말해준다.

뭐 어차피 무서워서 내손으로 죽일 수도 없고ㅎㅎ

사라지길 기다리거나 종이로 걷어내 창밖에 던지는 게 다라고 한바탕 징징대고 전화를 끊으니

문득 떠오르는 시.